죽음준비

죽음준비

죽음 자체는 생명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깨달음은 나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느끼도록 해주며,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따라서 의식이 맑을 때 천천히 마지막 날들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연습 과정이 없는 것이 죽음이기 때문에 죽음의 절정을 준비함으로써 평화롭고 고통 없는 과정을 스스로 연출해야 한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대부분은 세계 일주나, 평소 먹지 못했던 값비싼 음식 등을 열거한다. 먹고 싶은 것 등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 죽음을 계수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죽음에 대한 철저한 준비는 인생의 흐름을 걸러주는 가장 좋은 필터의 역할을 한다. 내일이 꼭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 보내고 있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내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육체를 위해서는 영원히 살 것처럼 돌아보고, 영혼을 위해서는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돌보라.

–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7:4)

준비된 자는 평화롭고 당당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삶의 시간들을 더욱 의미 있게 채울 수 있다. 다시 말해 오늘의 풍요로운 삶은 내일이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의미다.

 

1)  죽음준비 교육

죽음준비교육이란 죽음의 의미를 평소에 미리 생각해보고, 삶을 보다 보람되게 영위함으로써 죽음이 갑자기 찾아오더라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교육이다.

교육의 내용은?

첫째, 죽음준비의 중요성을 제시한 다음,
둘째, 웰빙을 잘 죽는 웰다잉(행복한 죽음)에까지 확대시켜야 하는 점을 지적하고,
세째, 우리 사회 죽음이해의 현주소를 분명하게 제시해 죽음정의가 없는 사실을 밝히고,
넷째, 일반인의 죽음이해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제시하고,
다섯째, 국내외 죽음 준비교육의 현황을 간단히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죽음준비교육의 효과를 제시하는 순서로 논의를 진행한다.

하루하루 살기 바쁜 세상인데, 언제 올지도 모르는 죽음까지 미리 생각해야 하는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준비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다. 또 죽음 준비는 노인만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죽음은 나이순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으므로, 죽음준비는 노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 모두에게 관계된다.

자동차 사고에 대비해 보험을 들거나 노후를 대비해 연금을 매달 붓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죽음준비는 마치 남의 일이기라도 한 듯 전혀 하지 않는 게 바로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죽음 준비는 삶과 죽음 각각에 관련해 말할 수 있다.

첫째, 죽음 준비는 삶과 관련해 삶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에 유념하면서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돌아보고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라는 뜻이다.
둘째, 죽음 준비는 죽음과 관련해 평소에 죽음을 미리 준비해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편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해 두라는 의미이다. 죽음 준비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죽음에 대비해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살라는 뜻이다.

죽음준비는 삶을 이치에 맞게 살아보기 위해 임박해 있는 죽음을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따라서 죽음준비는 죽을 준비가 아니라 바로 삶의 준비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 준비를 하지 않고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죽음준비교육은 이 땅에서 제대로 살도록 하기 위한 삶의 교육이다.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될지 심사숙고 할 필요가 있다.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라고 달라이라마도 말했다. 삶을 이치에 맞게 살지 않고서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바르게 사는 법을 익혀야 죽음을 평온하게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도 우리는 알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생활을 보다 단순하게 이끌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찮은 활동과 사소한 관심거리로 삶의 시간을 가득 채우게 되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즉 죽음의 임박성에 대면하지 않게 된다.

죽음의 임박성을 의식하면서 살게 될 때 ‘만일 내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면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지’자기 자신에게 되묻게 된다.

 

2) 죽음준비교육의 현황

미국의 경우 1963년 봄학기에 로버트 풀턴(Robert Fulton)교수가 미네소타 대학에 ‘죽음의 준비과정’과목을 개설한 이래, 많은 주(州)의 초등, 중등, 고등학교에서 다양한 교과목 안에 포함시켜 교육하고 있다.

1970년에는 첫 번째 학회가 있었고, 보건교육의 일부로 가르치기도 하고, 죽음을 문학의 교재로 취급하기도 하고, 사회과목 수업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청소년들에게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를 하게 하는데, 죽음의 여러 모습을 보며,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평소에 하라는 것이다.

국립 죽음준비교육 센터 (NCDE : National Center for Death Educatoin), 죽음준비교육과 상담 학회 (ADEC : Association for Death Education and Counselling) 등에서는 죽음준비교육 전문가를 양성해 내고 있다. 독일은 죽음준비교육의 전통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 기독교 신자라면 일요일 교회 설교를 통해 죽음준비의 중요성, 사후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 배우는 일이 많다. 일본도 독일 출신의 신부 알폰스 데켄 교수가 동경의 죠지대학에 1975년‘죽음의 철학’ 강좌를 개설했고 82년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세미나’ 85년‘삶과 죽음을생각하는 회’를 결성해 활동한 이래 일본 전역에서 다양한 모임에서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4월 15일은 ‘유언의 ‘이다. 변호사연합회가 주관하여 ‘유언’ 캠페인을 벌인다. 유언장 작성, 상속에 대한 법률적 상담 강연 등 각 층의 지식인들이 교육을 담당하고있다. 또 2004년부터는 예산을 편성해 죽음준비교육을 학교교육에 포함시키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국제적으로도‘죽음, 임종, 사별에 관한 학회’ (International Work Group on Death, Dying, and Bereavement), ‘국제임사체험연구회’ (I.A.N.D.S. :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Near-Death-Experiences) 등 다양한 학회가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에 죽음준비교육을 다양한 종교와 복지시설에서 평생교육 형태로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교육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한 상태라 내용이 부족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죽음을 보다 심층적으로,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핵심이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심사숙고가 빠져있고 주변에서 머뭇거리는 양상이다.

죽음이해의 부족, 성숙한 죽음문화의 부재는 지적되고 있지만,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바른 죽음 이해이고 바른 죽음정의인지 구체적인 의견제시가 빠져있다. 예를 들어 죽음이 과연 끝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 임종의 유형, 죽음체험과 명상수행, 성숙한 죽음문화의 모색, 죽음준비의 구체적 내용 등 핵심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또한 자살문제와 웰다잉 교육을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점 역시 지적되어야 한다.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에 이를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지만, 제대로 준비된 예방 대책이 거의 없다.자살은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죽음방식이므로, 죽음준비교육에서 이 문제를 간과할 수는 없다. 더구나 웰다잉 교육이 자살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것은 곧 웰다잉 전문가 부재의 문제와 연결되어있다.

 

3) 죽음준비교육의 효과

우리가 죽음과 관련해 분명하게 아는 사실은 4가지이다.

첫째, 사람의 평등, 누구나 죽는다.
둘째, 시간의 평등, 우리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셋째, 장소의 평등, 우리는 어디서든지 죽을 수 있다.
네째,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4가지 이유로 죽음 앞에서 평등한 존재이다. 그러나 누구나 이와 같이 4가지로 똑같은 조건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사람마다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이 똑같지 않다.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은 또한 동물의 죽음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동물은 육체적으로 쇠약해 지다가 죽게 되지만, 인간의 경우 육체적으로는 쇠약해져가도 정신적으로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육체적으로 노쇠해져 갈수록 정신마저도 나약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육체의 기능은 점점 쇠약해지기는 하겠지만, 정신력마저도 함께 늙어갈 이유는 없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인간은 정신적, 인격적으로 성숙을 거듭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성숙의 마지막 단계’라고 말한다.

죽어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절망, 부정, 분노의 감정을 품는다. 이런 임종 모습은 인간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반응이지만, 임박한 죽음에 순응해 수용한다면, 이는 인격적으로 성숙했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죽음을 지나칠 정도로 두려워하거나 혹은 죽음을 무조건 부정하는 식으로 죽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점점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화를 낼지라도 답답한 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일 뿐이다. 순응, 희망, 여유, 밝은 죽음의 단계로 올라가야만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다.

어떤 생사관 혹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이 크게 차이가 난다. 따라서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삶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는 죽음 앞에서 기본적으로 평등한 존재이지만, 실제에 있어서 평등한 존재는 아니다.

이제,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을 실제로 맞이하기 이전에,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지 물어 보았을 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학에서 죽음을 주제로 강좌를 개설해 20대 대학생들에게 죽음준비교육이나 자살 예방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수강 신청한 학생들의 첫 반응은 20대가 왜 죽음준비를 해야 되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죽음은 나이에 관계없이 찾아오고, 죽음준비란 곧 삶의 준비를 뜻한다는 설명에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수업에 임한다

임종을 앞둔 심리적 반응은 (생사학 창시자 “큐블러로스”박사)

 

(불행한 반응 5가지)

1 절망, 두려움 :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절망, 혹은 두렵다고 생각한다.
2 부정 :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까지 부정하면서 죽는다.
3 분노 : ‘왜 죽어야하는지’ 주위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4 타협 혹은 삶의 마무리 : 운명이나 의사와 타협해 삶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고자 한다.
5 슬픔 :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슬픔에 잠긴다.

 

(행복한 반응 4가지)

1 수용 : 죽음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2 희망 : 사후세계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지니고 죽는다.
3 유머, 여유 : 여유있는 모습으로 죽음에 임한다.
4 밝은 죽음 : 죽음에 임해 밝은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죽어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절망(첫 번째 반응), 부정(두 번째 반응), 분노(세 번째 반응)의 감정을 품는다. 아홉 가지 반응 중 첫 번째 두려움의 단계에서 다섯 번째 슬픔의 단계까지는 인간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반응이지만, 여섯 번째 순응 이후의 반응은 인격적으로 성숙했음을 시사해주는 반응. 죽음을 지나칠 정도로 두려워하거나 혹은 죽음을 무조건 부정하는 식으로 죽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점점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화를 낼지라도 답답한 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일 뿐이다.

순응, 희망, 여유, 밝은 죽음의 단계로 올라가야만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다. 어떤 생사관 혹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이 크게 차이가 난다. 따라서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삶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는 죽음 앞에서 기본적으로 평등한 존재이지만, 실제에 있어서 평등한 존재는 아니다. 이제,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을 실제로 맞이하기 이전에,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지 물어 보았을 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4) 교육 사례
“사형수의 마지막 증언을 들어보면,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형수들의 마지막 모습을 수업시간에 동영상 자료를 통해서 살펴보면, 정말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과연 저 사람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사형수들의 이런 변화된 모습을 보았을 때,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 뒤에 후회한다 해도 이미 늦은 일이다.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죽음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 보았다면, 아마 그런 잔혹한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음준비라는 것은 단순히 죽음에 대해 준비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보다 가치있게 살라는 의미이다.

가능하면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자신의 삶을 보다 의미있게 사는 것은 건강한 삶과 건강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사형수의 마지막 증언을 통해서 우리는 죽음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자살사례를 살펴보면 경제적, 사회적인 원인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살행위를 전적으로 사회에 그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만약 나의 친구가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말한다면 나는 우선 말보다 꼭 한 번 안아줄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버릴 정도로 힘든 일이 있니?’물어보고 친구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겠다. 대부분의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친구도 자살을 초래하는 상황이나 죽음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이 지금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충동적으로 자살을 생각해 자살하면 모든 일이 해결되고 자신은 편안해 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살을 강행함으로써 불행한 삶과의 단절을 바라겠지만,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다. 자살하는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이력과 자살행위로부터 무관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인간답게 살 권리, 인간답게 죽을 권리가 있다. 자살한다고 해서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친구가 심적으로 안정되고 정서적으로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힘이 들 때는 언제나 내가 옆에 있음을 기억해’라는 말도 덧붙여 줄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삶에 의지와 희망을 가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은 존엄한 존재라는 것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스스로를 사랑한다면 자기 자신을 버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살률이 늘어나는 사회의 문제는?

본인들의 심각한 문제들을 자살로 해결한다,

자신의 생명이기에 자신에게 자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죽으면 모든 고통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아무도 죽음이나 자살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막연하게 이런 식으로 생각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 고통이나 스트레스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쉽게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자살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해결책이고, 자살권이 자기에게 있고, 자살하면 현실의 고통은 끝이라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살문제를 미봉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 죽음의 질에 문제가 심각하니까 자살률이 급증하는 것이다. 자살률이 높은 것에만 사회에서는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죽음문화의 부재로 인해 자살을 비롯한 불행한 죽음이 양산되고 있는 점에 있다.